뮤지션의 티셔츠 한 장쯤은 다들 옷장에 있지 않나요? 뜨거웠던 시절, 페스티벌과 공연장에서, 때로는 웹서핑으로 귀하게 발굴했던 티셔츠들. 이제는 앨범을 사도, 책을 사도 굿즈가 따라옵니다. 케이팝부터 박물관까지, 굿즈의 시대죠. 정우영이 우희준과 굿즈를 이야기하겠다고 했을 때 의아했습니다. 지금? 왜 하필 굿즈?
그는 제주행 티켓을 끊고, 왜 우희준인지 분명하게 말합니다. 음악은 충분했지만, 굿즈는 없었다고요. 정우영은 우희준을 음악과 음악 바깥을 또렷이 구분해온 음악가로 읽어냅니다. 그러던 우희준이 ‘제주도에서 다 같이 (우희준) 굿즈 만들기’ 워크숍을 열었습니다. 스무 명 남짓 모인 자리, 이미 그곳에서 시작된 움직임을 정우영은 기록합니다. 우리가 이미 시작된 변화를 너무 늦게 알아차리지 않도록. 우희준의 ‘만들지 않음’이라는 태도를 BE(ATTITUDE) 비애티튜드 아티클에서 만나보세요
‘제주도에서 다 같이 (우희준) 굿즈 만들기’ 워크숍에서의 우희준
우희준은 지난 해 데뷔 앨범 ‹심장의 펌핑은 고문질›과 두 장의 EP ‹또 다시 살아남아 볼을 맞댄다›, ‹아, 진실이라는 모래알이 내 발 밑을 찔러서 따갑다!›를 모두 CD로 발매했다. 한 음악가의 한 해 작업물로서 기록적이다. 레이블 없이 모두 직접 발로 뛰어 만든 결과다. 2025년만 놓고 보면 그는 다작가였다. 공연도 바쁘게 열었다. 단독과 공동 합쳐 무려 약 60회, 그중에는 AI를 활용해 자신의 음악에 관해 고찰하는 한 편의 소극 ‘심장의 펌핑은 고문질이지만 X 우희준’이나 여성 음악가들의 연대를 도모하는 ‘(여자들의) 삶은 계속되어야 해’ 같은 야심찬 기획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이 열렬한 활동에는 비어있는 괄호가 있었다. 우희준은 굿즈를 만든 적이 없다.
‹노력›, 우희준, 2025
‘(여자들의) 삶은 계속되어야 해’ 포스터
‘심장의 펌핑은 고문질이지만 X 우희준’ 현장
예컨대 음악가 티셔츠는 21세기 음악 산업 고도화의 한 사례다. 2000년대 이전에 생산된 음악가 티셔츠의 터무니 없이 비싼 가격은 도안의 희소성이나 오리지널리티 때문만은 아니다. 그때까지 티셔츠의 프린트는 각 색상마다 수동으로 플라스티솔 잉크를 사용하고 색깔별로 스크린을 제작해 열 큐어링으로 고정하는 방식이었다. 두껍고 입체적인 질감, 선명하고 불투명한 색상, 수십년 입는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내구성 높은 프린트의 배경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CD 판매 수익이 추락을 거듭하면서, 공연과 굿즈가 그 대체재를 맡았다. 품질이 아니라 브랜드를 파는 음악가 굿즈의 특성이 십분 활용됐다. 디지털 프린트로 쉽고 빠르게 소량의 티셔츠를 생산하는 대신 품목을 늘려 수익성을 개선했다. 현재의 가정에 입지 않는 2000년대 이후 음악가 티셔츠가 그토록 많은 이유다.
‘제주도에서 다 같이 (우희준) 굿즈 만들기’ 워크숍 현장
우희준은 “굿즈를 판매하는 다른 음악가에 대한 비방이 아니”라는 전제로 굿즈에 대한 몇 가지 의문을 밝혔다. 첫째, 공연 때마다 굿즈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모두에게 당연하다는 이유로 나도 해야하는가? 둘째, 새 상품 소비 대신 빈티지 소비를 지향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하지 않는 방식을 누군가에게 권하는 것이 마땅한가? 셋째, 메시지를 중시하는 음악가가 팬의 욕망을 부추기는 것은 자연스러운가? 넷째, 예술가가 아닌 사업가의 일(공산품을 접하고 기획하는 일, 재고를 생각하는 일, 이상적인 상품보다는 현실적인 세일즈를 모색하는 일 등)은 창작 활동에 큰 해가 아닌가? 새삼스럽지만 지금까지 누구도 꺼내놓지 않은 질문들이었다. 하지만 이 질문들은 우희준을 저항가, 혁명가로 만들지 않는다. 우희준을 우희준으로 만든다.
우희준의 데뷔 앨범 ‹심장의 펌핑은 고문질›
EP ‹또 다시 살아남아 볼을 맞댄다›
EP ‹아, 진실이라는 모래알이 내 발 밑을 찔러서 따갑다!›
우희준은 음악과 음악 바깥을 구분하는 음악가다. 그러나 음악 바깥은 절벽으로서 의미 있지 않다. 음악의 윤리적인, 필연적으로 정치적인 영역을 확장하는 다리로서 의미 있다. 단적으로 우희준의 지난 해 활동은, 여자라는 정체성이 자신의 음악에 행사하는 영향력에 관한 탐구였다. 굿즈도 마찬가지였다. 음악 산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이 분야를 그대로 답습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에게 적합한 방식을 고민하다 한 해를 다 보내고 말았다. 그러나 이것을 음악가 개인의 개명한 윤리 의식으로 한정하는 것은 편협하다. 그의 음악적 방법론 또한 확장하는 다리로서 기능하기 때문이다.
‹아, 진실이라는 모래알이 내 발밑을 찔러서 따갑다!›, Official MV, YouTube, 2025
기타 리프가 주도하지 않는 록 음악, 베이스로 연주하는 포크 음악이라는 낯선 형식의 단서는 그의 과거 경력에서 일단 찾을 수 있다. 옴, 김오키, 이센스, 신한태와 레게소울 등 데뷔 앨범 이전 수년 간의 베이스 세션 활동 대부분이 록 밴드가 아니다. 또한 그는 자신이 처음 빠져들고 열중한 음악이 ‘붐뱁’이라 밝힌 바 있다. 뭇 음악가의 “저는 모든 음악을 들어요”라거나 “저는 다양한 시도를 즐겨요” 같은 하나마나한 말일까? 그 안티테제로서, 우희준이 베이스와 힙합으로부터 뻗은 다리는 넓거나 길다기보다 고유하고 튼튼하다.
‘제주도에서 다 같이 (우희준) 굿즈 만들기’ 워크숍 현장
‘제주도에서 다 같이 (우희준) 굿즈 만들기’ 워크숍은 지난 해 우희준이 음악과 음악 바깥 사이에서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굿즈에 대한 모색이자 실천이었다. 로그아웃 아일랜드의 공동운영자이자 제주도에서 다양한 수작업 워크숍을 주최하는 힌지가 함께 했다. 참가자들이 들고 온 입지 않는 티셔츠를 티코스터로 탈바꿈시켰다. 절개한 티셔츠 조각을 실처럼 사용해 직조했다. 선생님은 한 명인데, 색깔은 당연하고 어느 한 부분도 같지 않은 개별적인 티코스터가 완성됐다. 워크숍은 이 대안적 시도로 끝나지 않았다.
우희준이 음악가 굿즈에 가진 의문은 이 워크숍에서 나온 것이다. 참가자들의 음악가 굿즈를 둘러싼 생각을 앙케이트 형식으로 받았고, 음악가 굿즈를 주제로 대화하는 자리도 마련됐다. 우희준은 이 날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을 기획하고 그 과정을 다시 메일로 공유하겠다 밝혔다. 겨우 2월 7일과 8일 양 일 간, 로그아웃 아일랜드와 쇼트롱 시네마에서 20명 남짓의 참가자가 진행한 워크숍으로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저 자족적인 행사였다 평가절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은 이미 시작된 변화를 항상 늦게 알아차리곤 한다.
‘제주도에서 다 같이 (우희준) 굿즈 만들기’ 워크숍 현장
‘제주도에서 다 같이 (우희준) 굿즈 만들기’ 워크숍 현장
펄잼Pearl Jam은 1994년 티켓마스터에 티켓값 18달러, 수수료 1.80달러를 요청하며 그들과 싸우기 시작했다. 노동자 계급에도 부담없는 반값 이하의 공연료로 충분하니 수수료도 반으로 낮춰달라는 요구였다. 펄잼이 무모한 투쟁을 벌인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미 법무부에 독점금지법 위반으로 티켓마스터를 공식 고발했고, 무수한 동료 음악가들도 연대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법무부는 “입증 어려움”을 들어 조사를 종료했다. 하지만 펄잼은 실패를 인정하지 않았다. 라이브의 반값으로 현장을 즐길 수 있는 ‘공식 부트렉’ 라이브 앨범 시리즈를 알렸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 매해 72개의 라이브 앨범을 발매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2011년까지 앨범 숫자를 줄이고, 디지털 유통만 하는 등의 휴지기를 거쳐 다시 2012년부터 연 평균 20~30개의 라이브 앨범을 여전히 CD로 발매하고 있다.
2024년, 미 법무부는 더욱 거대해진 티켓마스터-라이브네이션을 독점금지법 위반으로 제소했다. 30년 전 법정 근처도 못 갔던 문제의 심각성이 이제야 조명을 받았고 현재 재판 중이다. 펄잼의 라이브 앨범은 해적판 라이브 음반을 근절시킨 시도로, 팬과 음악가 사이의 직접적인 관계를 강화시킨 사건으로, 셋리스트, 아카이빙 등 새로운 공연 문화를 창출한 선구적인 형식으로 지금에 와서 평가받는다. 2026년, 우희준이 음악가 굿즈의 대안을 모색했다 기록해둔다.
‹넓은 집›, 우희준, 2025
당연한 문제를 당연하지 않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를 떠난 개인은 있을 수 없으며, 심지어 그 사실이 창작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우희준의 대표곡 ‘넓은 집’은 이 문제를 다룬다. “나는 넓은 집에 살기 싫어요. 그게 너무 부끄러울 것 같아요.” 하지만 다시 한 번 그는 혁명가, 저항가가 아니고, 세상을 뒤엎자고 말하는 대신 인간의 조건을 자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나 이제 이 몸에 살기 싫어요.” 하지만 누구도 그 몸에 살지 않을 수 없고, 다만 그 몸 바깥에, 내 집 바깥에 내가 있지 않은지 살피는 사람들이 있다.
Writer
정우영 에디터(@youngmond)는 『Dazed & Confused Korea』와 『GQ Korea』에서 일했다. 서울 인기 페스티벌, 우주만물, 에코서울, 버드엑스비츠를 기획하고 운영했다. Youngmond로 믹스 테이프 『태평』을, Fairbrother로 앨범 『남편』을 발매했으며, 정우영으로 책 『버리기 전에 듣는 음악』을 출간했다.